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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현종의 축농증이 지킨 양귀비 사랑

제로 마인드 2024. 1. 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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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는 8세기 초중엽 당나라 현종의 며느리였다가 후궁이 된 사람입니다. 姓인 양(楊)씨에 직함인 귀비(貴妃)를 합쳐 양귀비라고 불리었다 합니다. 이백이 <청평조사>에서 날아가는 아름다운 제비도 양귀비를 보면 다시 단장을 한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합니다. 

 

시아버지와의 막장 드라마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숙부의 집에서 살다가 개원 23년(735) 17세의 나이에 현종의 제18황자이자 무혜비의 소생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가 되었습니다.

 

개원 25년, 양귀비 19세 때 아들의 부인을 뺏아 자신의 후궁으로 삼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막장 드라마가 벌어집니다. 시초는  현종이 총애하던 후궁인 무혜비가 죽자 우울증에 빠진 황제를 위로하기 위해 환관인 고력사를 포함한 여러 대신들이 현종의 마음에 드는 여인을 수소문하고 다니게 됩니다.

 

정식으로 현종의 귀비가 된 양태진

양귀비의 미모에 한 눈에 빠진 현종은 며느리를 당장 후궁으로 삼는 것이 무리가 되자 양옥환(양귀비의 아명)을 남편인 수왕 이모의 왕부에서 나오게 한 다음 도교사원에 출가를 시키고, '태진'이라는 도호를 받은 양태진은 여도사가 됩니다.

**당시 도교의 여도사들은 비구니와 달리 연애가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에 원하지 않는 결혼을 피하는 수단으로 여도사가 되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 양옥환이 여도사가 되면서 과거 수왕의 아내이자 현종 자신의 며느리라는 신분을 세탁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것입니다.

 

이때 현종의 나이 56세, 양태진은 23세로 나이 차이가 33살에 달했습니다. 당시 중국 평균 수명을 감안할 때 할아버지와 불륜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이후 천보 4재(745), 양귀비 27세 때 현종의 정식 후궁이 됩니다. 현종은 양태진을 위해  측천무후 이후 사라졌던 후궁 작위인 귀비를 부활시킵니다.

** 황후 아래에 3명의 비가 있었는데 숙비,덕비, 현비처럼 작호가 아닌 봉호를 수여 받는 형태였습니다.

** 이 세명의 비 위에 양태진을 위해 '귀비'라는 작위를 되살려 수여합니다.

**양귀비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폐후 왕씨가 폐위된 후 황후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양귀비는 사실상 황후와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만성 축농증의 현종과 암내 나는 양귀비

양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힐 정도로 외모가 뛰어났고 가무에도 뛰어났으며 눈치가 빠르고 총명함도 겸비해 현종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귀비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는데 겨드랑이 냄새가 심한 액취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악취를 없애기 위해 하루에도 수 없이 온천욕을 했다고 합니다. 

 

양귀비가 옷을 갈아 입을 때 나는 악취 때문에 시녀들은 너무 참기 힘들어서 코를 막거나 헛구역질을 하다가 궁에서 쫓겨나거나 심지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녀들은 항상 향주머니를 지니고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역사에 남을 천생연분

 

시녀들이 참기 어려워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심한 양귀비의 암내를 현종은 그 냄새조차 사랑한 것일까요? 아님 암내에 성욕을 참지 못하는 변태성욕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답은 현종이 평소에 심한 만성 축농증을 앓고 있어 양귀비의 심한 암내를 맡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연이 있을 까요? 경국지색을 갖춘 양귀비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냄새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종의 심한 축농증이 양귀비와의 사랑을 지키는 비법이 된 셈입니다.

** 참고로 양귀비는 전 남편인 수왕 이모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수왕은 이후 새 왕비와 다른 후궁들 사이에서 자식들을 5남 22녀나 두었습니다.

**수왕 이모는 양귀비의 암내로 잠자리를 멀리한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남녀간의 인연이란 하늘이 정해 주는 것이라 느낄 수 있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시중들 까지 견디지 못하고 쫓겨날 정도로 심한 암내를 가진 양귀비를 현종이 그렇듯 양귀비의 아름다움 만을 간직한 채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이 만성부비동염, 축농증 때문이라니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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