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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클래식에 도전한 대중음악 로큰롤(Rock & Roll)

by 제로 마인드 2023.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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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이 등장하기 이전의 서양음악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오페라가 주를 이룬 클래식(Classic)이 주류였고, 일부 귀족과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 등장한 로큰롤은  서구의 음악계를 평정해 버렸고 서양의 대중음악 전체를 대표하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로큰롤

 

유럽의 발라드(balad)

 



 

로큰롤이 대중음악의 주류로 등장하기 전에 유럽에서는 일반 평민들이 즐기는 음악이 있었습니다. 평민들 사이에서, 민담이나 전설에 적당한 곡조를 붙여 암송하는 전통이 이어져 왔는데, 이것을 발라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라드는 지방에 따라 곡조와 가사의 편차가 심해 지역적인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발라드는 농경시대의 생활기반에서 생겨난 느린 곡조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에 의해 조성된 빠른 공장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음악

고전과 전통에 얽매어 있던 음악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컨트리 앤드 웨스턴(Country and Western)

유럽에서 건너간 이주민들 중에서 가혹한 자연조건과 인디언의 장애를 몸으로 부딪치며 서부로 향해 나아간 개척자들은 그들 나름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발라드의 영향을 안고 가면서도 확실히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컨트리 앤드 웨스턴'입니다. 흔히 컨트리 음악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존 덴버의 음악이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흑인음악

유럽에서와 전혀 다른 음악환경이 바로 흑인음악입니다. 노예로 미국으로 이주한 흑인들은 유럽의 음악적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고, 오히려 아프리카 토속음악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노예생활에 지쳐있던 그들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였습니다. 목사나 선교사들이 문맹인 흑인들에게 유럽식 고급찬송가를 가르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흑인들의 토속음악의 특성에 맞게 찬송가를 수정해서 부르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 여기서 로큰롤의 뿌리가 될 중요한 음악이 탄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리듬 앤드 블루스(Rhythn and Blues)였습니다. 흔히 'R & B"라 불리는 경쾌하고 율동적인 음악은  발전해서 '재즈(Jazz)'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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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의 탄생

이렇게 '컨트리 앤드 웨스턴'과 '리듬 애드 블루스'가 결합해서 로큰롤이라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대중음악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1,2차 세계 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을 겪고 나서 두 장르의 결합이 현실화되어 1950년대 중반 로큰롤이 서구 음악을 평정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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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세계 대전은 노동자들을 단지 노동력의 대상만이 아니라 전투력의  중요한 기본 단위로 인정하는 변화가 생기게 되었고, 이것이 노동자들의 지위상승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여성노동자를 포함해 전체 노동자들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최대의 전승국인 미국의 병사들은 승전의 기쁨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고향으로 귀환을 했습니다.

 

그러나 변화된 지위에 걸맞는 문화적인 욕구를 채워줄  무언가가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분출할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인 하층민들의 '컨트리 앤드 웨스턴'과 흑인들의 '리듬 앤드 블루스'가 자연스럽게 결합되어 '로큰롤'이 탄생한 것입니다.

 



로큰롤의 성격

로큰롤은 이렇게 대중들의 음악이었기 때문에 형식과 내용이 간소하고 자유분방했습니다. 기존의 오케스트라나 합창단과 달리 최소한 기타와 드럼과 보컬리스트 1명만 있으면 구성이 가능했고, 악보는 있지만 그에 구애받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가사도 자신들이 평소 술집에서 지껄이던 음담패설이나 잡담이면 충분했습니다. 춤도 왈츠나 탱고와 같은 격식을 차린 것은 다 거부하고, 제멋대로 몸을 흔들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로큰롤의 성격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기성 상류층의 고급문화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록 앤드 롤'의 뜻 자체가 "부딪치고 돌린다"인데 이것은 민중들 사이에 성행위를 암시하는 속어였습니다. 이런 속어를 공공연하게  음악 장르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본능적인 욕구는 감춘 채 도덕적인 척하는 기성문화에 대한 직설적인 공격이었던 것입니다.

 



대중의 우상 탄생

로큰롤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최초로 대중들 속에서 우상이 탄생하게 됩니다.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와 영국의 비틀스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때마침 발전을 거듭하던 방송기술의 도움으로 로큰롤을 단숨에 주류음악으로 부상시켰습니다.  클래식 음악은 주류의 자리를 내주고 변방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대중문화의 상류문화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음악의 산업화, 로큰롤의 변색

로큰롤이 대중적으로 성공함에 따라 음악도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음악은 세련미가 한층 더해지고 다양한 갈래로 분화, 발전하는 등 음악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공을 위해서 로큰롤에 뛰어드는 음악가들이 양산되었고, 그에 비례해서 주류 로큰롤의 저항적 성격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앨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대중스타마저도 후기에 이르면 저항성을 완전히 잃고 탈콤한 목소리로 사랑 이야기만 노래하게 됩니다. 

 

소수이긴 하지만 로큰롤의 저항적 성격을 고수한 이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가수 밥 딜런(Bob Dylan)이 60년대 초에 작곡하고 노래한 <Blowing in the wind>은 흑인 민권운동가요로 널리 애창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사되어 6,70년대 학생운동에서 널리 불려진 바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MFj8uDub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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